좋은 도시와 좋은 시민

좋은 도시와 좋은 시민                                                                                                    

일라인 그래함(Elaine Graham)은 What makes a Good City?에서 다원화된 사회의 도시교회의 역할에 관심을 가지며, 정치, 경제, 교육의 문제 뿐 아니라 도시의 문화적 이야기, 언어, 기억, 가치 등을 함양시키는 역할에 주목한다. 더 언급하자면 시민들의 경제적 문제와 삶의 질, 거주 환경과 실업률, 이웃과의 정서적 관계 등 교회의 역할을 주문하는 것이다. 2006년에 발간된 Faithful Cities는 결론부에서 ‘좋은 도시’를 3가지 키워드로 정리하는데, 그것은 “평등, 권력분산, 참여”다. 이런 비물질적 차원의 강조는 도시의 활발한 재생을 위한 개방적이면서도 상호성을 강조하는 흐름을 반영한 것이다. 도시의 참여적인 시민의식을 키우고 도시 공동체의 민주주의를 세워나가는데 있어서, 도시 교회는 사랑과 정의를 기반으로 지역의 신뢰와 상호적 관계의 매개적 존재가 되어야 한다. 도시 계획자이자 교수인 레오니 샌더콕(Leonie Sandercock) 역시 도시의 영적 차원을 강조하면서 장소와 공간에 대한 실제적 의미를 부여하는 스토리와 가치 체계들이 도시 재건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고 말한다. 더 나아가 좋은 도시는 균형잡힌 부의 분배, 이타적인 시민의식, 사회 정의와 환경의 지속성, 인류애 대한 비전을 꼽았다.

공공신학으로서 도시 신학은 공공정책이나 사회적 이슈를 다루는데 있어서 신앙과 신학적 통찰을 제시하며 시민 사회의 도덕적 가치 함양이나 공공선 증대에 관심을 둔다. 이런 작업의 대표적인 예가 존 아더톤(John Atherton)인데 그는 로널드 프레스톤(Ronald Preston)을 기념하는 Studies in Christian Ethics에서 “Marginalisation, Manchester and the Scope of Public Theology”이라는 논문을 작성했다. 맨체스터라는 도시의 산업화 과정에서 경제적, 제도적, 문화적 상황에서 ‘소외화’되는 과정을 분석하면서 공공신학적 접근을 시도한다.

맨체스터의 소외지역에 대한 연구에는 역사적인 배경이 있는데, 1845년에 엥겔스가 Condition of the Working Class in England에서 맨체스터 지역의 Salford 지역 연구를 인용한 바 있고, 1970년대에는 윌리엄 템플 파운데이션에서 맨체스터의 Ordsall에 관해서 연구했다. 엥겔스의 연구를 보면 역사적으로 이 지역들에 3가지 문제적 구분이 있음을 알 수 있는데, 경제 성장의 문제, 복잡해진 근대화와 정치의 문제, 글로벌한 흐름에 따른 다문화와 다원화의 문제가 그것이다.

맨체스터는 19세기 경제적으로 급격한 성장을 이룬 곳으로 새로운 기술과 시장 개척, 투자 환경 등에 상당히 우호적인 문화들이 자리하고 있다. 많은 상품과 서비스를 만들어내고 수익을 거두며 인구의 집중화와 도시의 팽창이 가속화되었다. 부의 집중화는 노동자와 다른 계층들의 소외화로 이어졌고 이런 악순환은 반복되었다. 소외화 문제는 지역의 문제이며 동시에 글로벌한 이슈인데, 세계은행과 같은 국제기구들은 좋은 정부의 역할을 주문하고 있다. 민주적인 정치와 평등을 지향하는 정책들로 가난의 악순환 고리를 끊어야 할 책임을 가지고 있다. 부가 증가하는데도 소외된 이들이 함께 늘어나는 것은 구조적인 문제다.

그렇다면 좋은 도시는 인간을 위한 도시인가? 그건 아니다. 그래함은 도시신학의 출발점으로 어거스틴의 『신의 도성』(City of God)을 들면서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자아에 대한 사랑으로 두 도성이 구분된다고 보았다. 자아에 대한 사랑은 이기심과 개인주의를 낳지만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관용과 자선, 모두를 위한 선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한다. 버지니아 대학의 찰스 매튜(Charles Mathewes) 역시 A Theology of Public Life (2008)에서 죄는 개인화되는 것으로 하나님을 향한 사랑에서 분리되어 이기심과 땅의 욕망을 갖는 것이지만 죄와 사사화에서 회복되는 것이 바로 공공성(Public-ity), 하나님과 이웃, 자연과의 공동성, 상호성을 갖는 것이라 말한다. 윌리엄 카버노(William Cavanaugh)는 어거스틴의 신의 도성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종교적 신앙과 공적 이성, 제자의 삶과 시민의 삶 사이에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게 하는 것을 보여주며, 자아 안에서 구분되지 않지만 덕의 공간 또는 실천적 영역에서 다른 두 이야기가 공존하고 있다고 보았다. 즉 도시 안에의 삶이 신앙과 현실의 적절한 조화와 참여적 균형을 가지고 있으며, 도시 재생의 자원으로서 신앙 공동체의 역할이 필요한 것이다. 공공신학으로서 도시 신학의 관심이 여기에 있다.

그레함 교수는 공간에 대한 새로운 관점과 신학이 필요함을 말하면서, 안정적인 도시를 위해 환경과 생태 문제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도시는 번영과 안정을 위해서 물질적인 환경에 매여 있으면 안 되며, 정치, 경제, 인구의 집중화보다 유기체적 연결 구조를 회복해야 한다. 미국의 인권위에서 2008-9년에 발표한 보고서에 의하면 Harmonious City는 구성원과 공동체들의 자연스러운 연결환경이 필요하고, 공정한 정치경제 시스템, 정의로운 시민 사회를 위한 의식이 자리해야 한다고 보았다. 더 나아가 로저스의 주장처럼 정의로운 도시는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하고 음식, 주거, 교육, 복지와 같은 사회적 서비스들을 공정하게 분배되어야 하며, 사람들이 자유롭게 자신의 미래를 결정하고 정책에 있어서 참여 가능해야 한다. 아름다운 도시는 물질적인 것 만큼이나 미학적으로 인간의 영과 마음을 성숙할 수 있는 토대를 갖추어야 하며, 창조적인 도시는 그들의 잠재력을 확산시킬 수 있도록 열린 자세와 도전 정신이 존중받는 곳이어야 한다. 생태적인 도시는 도시 개발에 있어서 그 악영향을 최소화하고 자원의 효과적인 사용과 생태자본의 보전을 위해서 작은 것 하나라도 다시 보는 자세가 있어야 할 것이다. 다양성을 보장하는 도시는 공적 삶에 있어서 새로운 가치와 공동체들의 차이를 존중하며, 다중심적인 도시 구조를 통해 과밀화를 방지해야 한다.

그녀는 도시의 재건을 위한 여러 가지 사례 중에 문화로 접근했던 리버플과 글래스고우를 언급하는데, 어떻게 문화가 도시의 재건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설명한다. 리버플은 1년에 350만 명의 관광객들이 찾아오고 1억 7600만 유로의 매출을 기록했다. 유럽 문화의 심장으로 폴 맥카트니, 링고 스타, 시몬 래틀 등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이의 유산이 자리한다. 글라스고우도 1990년대 이후로 경기가 침체했는데 문화의 도시로 전략을 수정하면서 상당한 경제 성장을 이루고 있다. 오래된 조선소와 건물들을 박물관으로 바꾸는 등 도시의 산업화 역사를 대중문화로 변신시켰다. 예술가와 음악가들에게 지원하면서 도시의 활력을 더해갔다. 맨체스터도 마찬가지인데, 예술, 스포츠, 관광객, 전통유산, 미디어 등에서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하면서 도시가 새롭게 단장하고 있다. 도시 재건을 위해 문화 자본의 역할이 중요하다면 이런 부분에서 교회와 도시 재건의 접촉점을 찾아내야 한다. 특별히 도시의 문화가 경제논리의 흐름으로 것과 다르게 교회 공동체가 제시할 수 있는 독특한 관점들과 실천들을 접목해 나가야 할 것이다.

먼저는 도시의 공동체성을 강화할 수 있는 관계 중심의 사역들이 필요하다. 그동안 교회는 신앙 공동체의 성격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기도, 예배, 말씀 나눔 등을 전개해왔지만 지역 공동체의 건강성을 회복을 위해 관계를 세워나가고 관용하는 문화를 만들어가야 한다. 경제적인 부로 행복과 번영을 측정하는 것과 반대하여 인간의 삶과 질적 만족, 관계의 안정, 자아실현 등을 포함한 웰빙에 대한 통전적 이해를 제시해야 한다. 또한 지역의 약자들에 대한 돌봄 사역을 통해 그들의 지역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하며, 공공기관에서 감당하지 못하는 복지차원의 관심도 교회가 감당하면 좋을 것이다. 건강한 지역 문화를 생성을 위해, 축제, 바자회, 교육사업, 음악회, 나눔 장터등도 좋은 실천이 된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성도들을 좋은 시민으로 양육하는 것이다.

교회의 리더들은 성도들의 삶이 신앙적 신실함으로 바탕으로 하면서도 일상에서 고립된 이원적 삶이 아니라 공적 삶의 영역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청지기적인 삶의 자세를 배양해야 한다. 교회 공동체의 시민의식 강화와 조직의 노력은 자연스럽게 지역 공동체의 운동으로 연결되며 아래로부터의 움직임은 사회정의를 위한 운동으로 이어진다. 자기 중심적인 삶에서 공적 관계적인 삶으로의 전환은 하나님의 창조 세계에 대한 관심이며, 교회가 위치한 지역에 대한 선교적인 태도이자, 하나님의 나라로의 회복을 위한 복음적 활동임을 알아야 한다.

 

이 글은 새물결아카데미에 기고했던 글입니다.

글쓴이 김승환 목사는 현재 장로회신학대학교 기독교문화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존 하워드 요더로 석사논문을 썼고, 박사과정에서는 공공신학과 급진정통주의 관점에서 도시문제를 연구하고 있다.

출처: https://www.cricum.org/1254 [문화선교연구원]

참고문헌

Elaine Graham and Stephen Lowe, What makes a good city? Longman and Todd Ltd, Darton, 2009.
John Atherton, “Marginalisation, Manchester and the Scope of Public Theology,” ed Esther Reed, Studies in Christian Ethics.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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